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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별이 아니다/ 나태주 떠돌이별이 아니다/나태주 하늘 가는 별에게 길이 있는 것처럼사람에게도 자기만이 가야 하는 길이 있다태어나면서 하늘로부터데리고 온 길이다다만 그 길을 일찍이 발견하고끝까지 간 사람이 있고쉽사리 찾아내지 못하고 헤맨 사람이 있을 뿐이다정말로 성공한 사람의 일생은어린 나이에 자기의 길을 찾아내고늙도록 쉬지 않고 끝없이자기의 길을 간 사람의 일생어렴풋 자기의 길을 알기는 알았으나도중에 딴 길로 가거나다른 사람들의 길이 부러워 기웃기웃그 길을 따라다닌 사람과는 다르다저마다 사람에게는하늘의 별에게 길이 있듯이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반짝인다 샛길로 빠지지 말아라우리는 결코 떠돌이별이 아니다. 더보기
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장석남 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장석남 그날 살아 있다고 안심하라고 철없이아픈 마음이광교 근처를 지날 적에 칸나꽃을 만나더니꽃 밝은 잠을 자고 싶어하네 빈집들 속에 빈집으로 걸어들어가쪼그려 잠들면만발하는 고통아 잎 넓은 한 그루의 애인아잠이 너무 밝다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서늙은 산의 울음 소리 들리고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 조르고 산 울음에종로쯤 떠밀릴 때 나사렛 사람처럼고통이 내게 묻네 "가는 곳이 어디지?"휑하니 비어 대답하는 길바닥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 조르고 더보기
사람의 서쪽 / 서안나 사람의 서쪽/ 서안나 사람의 서쪽에는무너져 내리는가난한 저녁이 있지 서쪽은내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 죽고 싶다는 후배의고백을 들었을 때서쪽이 아팠다 어떻게든 살아내려는후배와 후배보다더 무너진 내가 있었다 오늘도 잘 견뎌냈어옆구리의 녹슨 뼈를 뽑아유서 같은 일기를 쓰는 밤 사람의 서쪽에는어떤 젖은 결심 같은 게 있지 더보기
시인 노트/이상국 시인 노트이상국새로 나온 문예지를 읽는다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시들이 있다그러나 다 이해되면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어차피 시는 부족의 언어다시보다 프로필이 긴 시인도 있다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다가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면 한 사날 묵어가고 싶다시인들은 고양이처럼 노동을 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거만하다그래서 아무도 시인을 겁내지 않는다시인을 질투하는 건 시인들뿐어떤 시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나에게는 출간한 지 십년 만에 2쇄를 찍은 시집도 있다시처럼 끈질긴 것도 없다요즘 시인들은 지면에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나이를 가린다고 시도 가려지는 건 아니지만시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일생의 업이 이거 하나인데 어떤 사람은 요즘도 시 쓰냐고 묻는다달아나고 싶다ㅡ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 더보기
얼굴/ 마경덕 얼굴마경덕​심벌이 불거진 근육질 남자, 브래지어 팬티 한 장 걸친 미끈한 여자,버젓이 대로변에 서있는 목 잘린 속옷가게 마네킹들죄짓고 싶었네 뻔뻔하고 싶었네 많은 사람에게 면목 없고 싶었네저런, 쳐 죽일, 배터지게 욕먹고 싶었네목 위에 얼굴만 달리지 않았다면기왕이면 여러 개의 목을 갖고 싶었네 꽁꽁 머리통 숨겨두고일회용 목으로 바꿔 달고 싶었네 재빠른 자라목이 되고 싶었네왜 내 목은 하나 일까건드리면 툭, 부러지는 한심한목 위엔 얼굴이 있고 얼굴에는 마경덕이라는 이름이 있네툭하면 짐승 발톱이 돋네 제발 나이값 좀 하라고 엄마는 말하네나 아직, 사람이 되지 못했네._마경덕 시인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선경상상인문학상, 모던포엠문학상, 김기림문학상시집 『신발론』, .. 더보기
옥수수차 끓이기/ 이처음 옥수수차 끓이기/ 이처음 주전자 안에 새가 산다아직 새가 되지 못한 새가 산다 둥지가 넓어 새는 보이지 않고 골짜기 바람을 가져오는 듯 새 날갯짓 소리 들린다바람개비은하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듯 회오리치는 상승기류가 있다 태어나는 것들은 모두 이렇게 뜨거워진 후의 일다 식어버린 오늘과 얼마나 먼 거리인지 어미 새가 알을 낳듯 끓는 물에 옥수수알을 떨어뜨린다 몇 날 며칠 가라앉아도 닿을 수 없는 당신처럼 바닥이 깊어 옥수수알이 자꾸 떠오른다위아래 없이 떠 있는 것과 가라앉은 것이 다르지 않은어떤 종말도 이상하지 않은 시원기 증기에 유리창 안과 밖이 서로 열린다섞이는 건 새로운 공중이 만들어지는 것 주전자가 넓어진 공중에 흰얼굴기러기를 날린다꼬리를 따라 흰이마기러기가 날아오른다아직 남은 새가 있어 주전자가 .. 더보기
2026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_ 툰드라 속으로 (외 9편) / 유수향 2026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_ 툰드라 속으로 (외 9편) / 유수향 | 심사위원 : 이기철, 김지명, 김부회 툰드라 속으로 유수향회색 두룰라민* 날개에 너를 실어 보낼게너는 긴 머리카락처럼 흐느끼는 기계음으로 남는다네가 두고 간 것을 정리해 줄게필기구, 오래된 수첩, 아직 배우지 못한 오카리나, 티스푼나는 물컹한 자루에 기대어 한 시간쯤 쉬고안을 휘저어 식욕을 꺼내 씹을 거야 너의 비상 착륙지는 툰드라소식을 기다릴게표면만이라도 녹아 있는 무대어디든 살아남는 눈물들이꽃이끼 솔이끼 우산이끼라는 예쁜 이름으로 핀다는 그곳 강한 산성의 햇살 속에서너는 북극여우처럼 날렵하고 당당하지늘 등이 시린 나는심장을 꺼내 들고 너의 열렬한 관객이 될 거야 네네츠인.. 더보기
돌아오지 않는 사람 / 송찬호 돌아오지 않는 사람 송찬호 해가 지는 아침에 그는 집에 도착하였다일주일 전에 집을 떠났다가십 년 만에 돌아왔다 장미는 여전히 붉었다지붕 위 청동 수탉과 피뢰침은 서로 높은 자리를 다투고둥그런 식탁은원탁의 기사들을 기다렸다일주일 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집을 떠나 십 년을 떠돌았다상인으로용병으로피팔나무 그늘 아래 명상가로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였다 세상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맨드라미 여왕이 죽고공중 감옥이 탄생하고폐품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기도하며 울부짖었다세계는 병들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려고 무진 애를 썼다부귀와 명예를 싣고아니, 빈손만이라도자신의 그림자와 손잡고 귀향하지 못하더라도한 움큼의 수염이나 한줌의 재라도 십 년 동안 시간 밖에서 떠돌던 것이 아쉽지 않았다그는 해가 지는 편에 속한 .. 더보기